인실리코(In Silico) – 의료기기 규제는 언제 ‘가상의 데이터’에 신뢰를 줄 것인가
의료기기 규제의 근본은 안전성과 성능 입증입니다. 그러나 기존의 인체 또는 동물 기반 실험은 비용, 시간, 그리고 윤리적 문제라는 삼중의 장벽을 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인실리코(In Silico)’는 컴퓨터 기반의 시뮬레이션으로 실제 임상시험을 보완하거나 대체하려는 시도입니다. 데이터 기반으로 안전성과 성능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의료기기 평가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인실리코는 이미 미국 FDA의 ASME V&V 40(2018)을 중심으로 신뢰성 평가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FDA는 “모델의 사용 맥락(Context of Use)”을 명확히 정의하고, 모델의 위험도에 따라 검증·검증(Verification & Validation)을 단계별로 평가하는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반면, 유럽연합(EU)은 여전히 MDR(2017/745)에 ‘컴퓨터 모델링 자료의 제출 가능성’을 언급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즉, 법적 근거는 있으나 실질적 평가 프레임워크는 부재한 상태입니다. 이 격차는 의료기기 산업 내 기술 발전 속도와 규제 수용 속도의 불균형을 드러냅니다.
현재 인실리코 데이터는 EU 내에서 독립적인 ‘임상 근거’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보조적 증거로만 수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orphan device나 고위험군 환자처럼 실제 임상시험이 어려운 분야에서는 인실리코 모델이 거의 유일한 데이터 획득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규제당국과 제조사는 ‘단계적 수용(Phased Acceptance)’ 접근이 필요합니다. 즉, 초기에는 전통적 임상자료와 병행하여 사용하고, 모델의 신뢰성이 충분히 입증된 후에는 단독 근거로의 확장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합니다.
또한, AI 기반 인실리코 모델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모델의 투명성, 데이터 편향, 알고리즘의 검증이 새로운 규제 과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최근 제정된 EU AI Act(2024/1689)는 인실리코를 직접 다루지 않았지만, 향후 MDR 개정 과정에서 이 기술을 공식적으로 포섭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유럽이 미국과의 규제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결국 인실리코의 미래는 기술의 성숙도가 아니라 ‘규제의 신뢰도’에 달려 있습니다. 규제당국이 모델 신뢰성 검증의 표준화(예: ASME V&V 기반 국제 가이드라인)와 투명한 검토 절차를 제도화할 때, 비로소 인실리코는 의료기기 규제의 주류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3줄 요약
1. 인실리코는 의료기기 평가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끄는 핵심 기술입니다.
2. 미국은 ASME V&V 40을 통해 명확한 규제 틀을 마련했으나, EU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3. 규제 신뢰성 확보와 국제 표준화가 인실리코의 본격적인 도입을 결정짓는 관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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